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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시계

명품시계 탐구(2)-- 파텍필립(Patek Philippe)

 인터넷상에 있는 사진,자료 등을 참고하여 쓴 것임을 말씀드리며, 저작권 등에 위반이 되다면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HISTORY

Antoni Norbert de Patek(앙뜨와르 드 파텍, 이하 Patek이라함)은 1830년 군인으로 러시아지배에 항의하는 폴란드혁명에 참가하였다가 폴란드에서 추방되어 1833년 스위스에 정착하였다.


이때 예술에 관심을 갖고 유명한 풍경화가인 Alexandre Calame와 같이 공부를 시작한다. 예술을 향한 열정이 있는 그는 시계 무브먼트를 사서 완성한 시계들을 폴란드 고객들에 팔았다.


이 사업의 성장에 힘입어 그는 자신의 시계회사를 구상하고 파트너로 같은 이민자인 그의 고향친구  Franciszek  Czapek(프랑소와 차벡)을  선택하여

1839년 “Patek and Czapek " 이라는 시계회사를 설립하였다.

Patek and Czapek 사는 직원 6명이 종사하며 고품질의 회중시계를 연간 200여개 정도 생산하였다.

 

한편 장 앙드리안 필립(Jean Adrien  Pilippe, 이하 Pilippe이라함 ) 1815년  프랑스에서 시계사의 아들로 태어나 발명의 재능이 넘치는 기술자로

 성장 했으며, 21세의 나이에 자신의 공장을 열었고 회중시계를 년간 150개를 생산해 오고 있었다.

 

 

 

 

1844년 파텍은 빠리에서 열린 시계박람회에서 금상을 받은 프랑스의 젊은 발명가인  Pililippe을 만나고서는 Czapek을 제쳐두고 Pililippe과  동업

하기로 결심한다. Czapek을 교체한다는 것은 고객을 잃거나 파산에 처할 수 있는 위험부담이 있었지만 그는 결국 Pililippe을 선택했다.


1845년 Patek은 회사의 진출과 마케팅, Gostkowski은 회계와 통산, Pililippe은 시계제조를 담당하는 것으로 역할분담을 하고,  Patek이 대소사를 결정하는 대표가 되는 것으로 계약서에 서명한다.

 


 

 

1846년 세계 최초로 독립 분침을, 2년 뒤에는 세계 최초 자동 태엽을 개발하는 등  Pililippe과의 새로운 동업관계가 성공적으로 발전해간다.

그러던 중 Patek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일이 발생하게 된다.

1851년 런던의 세계박람회에 알버트왕자와 함께 참가했던 빅토리아여왕이 Patek의 감거나 세팅하는데 키가 필요하지 않은 지름 30mm의

소형시계를 구입했다. 빅토리아 여왕과 알버트왕자가 최초로 파텍시계를 소유한 사람으로 기록되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즉시 Patek의 회사는 명성을 얻게 된다. 후에 회사의 이름을  Patek Pililippe & Cie 로 바꾸고 그의 제품들을 러시아와 몇 몇 다른 시장에

소개하고 빠리의 Rodanet, 라이프치히의 Elimayer  등에 공급을 개시한다.

 

1863년에 Pililippe의 열쇠없는 회중시계는 빠리와 제네바 시계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그는 "jouranl de Geneva" 일간지의

기자로써 회중시계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기도 하였다.

 Patek Pililippe은 뉴욕에 위치한 Tiffany & co와 배타적 협정서를 체결하면서 미국과 사업적 관계를 가진 첫 번째 시계회사가 된다.

또한 리우디자이네루에 있는 Gondolo & Labouriau라는 유통업체와 사업적 관계를 가지면서 라틴아메리카에도 알려지게 되었으며

피오9세를 비롯한 여러명의 교황과 니콜라이 2세, 차이코프스키, 바그너, 록펠러, 아인슈타인 등이 파텍필립의 고객명단에 오르면서 명품시계로서

최고의 위치를 확고히 다지게 된다.

 

 1929년의 경제위기는 1930년대 전반에 걸쳐 제품의 발전을 더디게 하였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Patek Pililippe은 자사의 창조성을 계속 발전시켰고

 삼중시계와 영구달력, 음력 등이 장착된 "Calatrava" 명명되는 걸작을 생산한다.

"Calatrava"라는 이름은 중세시대 스페인들이 무어인들을 맞서 "Calatrava"요새를 지켜낸 것에서 기원하며,  용감한 스페인기사를 상징하는데서

 Patek Pililippe의 마크를 수용하였다.

1932년 Patek Pililippe은 Charles & Jeanstern은   LeCoultre와의 경쟁에서 이긴 스턴형제(Charles와 Jean Stern)에게 팔리게되어 가족에 의해

운영되는회사로 변모하게 된다. 

 

스턴형제(Charles와 Jean Stern)는 파텍 필립이 향후 하이엔드 브랜드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하우스 무브먼트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했으며,  

Patek Pililippe을 인수하자 가장 먼저 인하우스 무브먼트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노력끝에 파텍 필립의 엔트리모델인 '칼라트라바'가 등장하게 되었으며 그 첫 모델이 그 유명한 칼라트라바 Ref. 96다.

1962년에 최초의 영구 캘린더가 장착된 오토매틱 시계를 개발하였고, 1968년에는 고난이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Baguette형 시계를  제작했다.

1976년에 Nautilus 스포츠시계 컬렉션을, 1993년에는 Gondolo컬렉션을 소개하였다. 오늘날에도 Patek Pililippe은 시계제조산업을 위한 발명과

 기술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와 발전을 해오고 있다.

 

 

PRODUCTION

 

   

대표 MODEL

 - 칼리버 89 :  창립 150년 기념모델,  총 1,728개의 정교한 부품 사용하였으며 제작에 총 9년이 걸린 명품. 윤년계산 등  33가지  기능이 있음.

                    경매에서 4백50만 스위스 프랑에 낙찰된바 있다.  요즘 시세는 한화로 약 60억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 5960 애뉴얼 캘린더  : 2009년 출시되었으며 “파텍필립 기술의 결정체”라 평가됨

 

 

 

 

Patek Philippe 이용자

 

 

제작과정 보기

- 사진보다는 동영상으로 보는게 더 실감나는군요 ( YOU TUBE에서 퍼옴)__시계마니아는 꼭 보시기 바람(1:50까지 건너 뛰어서 제작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