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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사람들

알치(ALCHI)의 정다운 모녀(母女)...................[내가만난 사람들④]



    I 2009.8월  ALCHI-LADAKH)에서   I 모녀(母女) I

내가 알치를 갔을때는 햇살이 따가운 2009년 8월 이었다.

라다크 지역 대부분은 보리수확이 한창이었으며, 기계의 혜택없이 낫으로 베고, 손으로 탈곡을 하고 있었다.

동네는 조용한 가운데  몇 가족들이 밭에서 수확한 보리의 까끄레기를 제거하고 알맹이만 골라내는 마지막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사진기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내가 좀 신경이 쓰이는지 여자들은 뒷모습만 보이려 애쓰며, 간간히 수건으로 얼굴을 가려버린다.

내가 온화한 얼굴을 가지신  CH****  아주머니를 만난 것은  아주 운이 좋은 것이다. 불교말을 빌리면 전생에 옷자락이라도 한 번 스친 인연이 있을 것이다.

라다크사람들(특히, 여인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사진기에 익숙치 않아 사진기에 찍히는 것을 극히 꺼려하는 것을 경험했기에 한 컷의 사진을 찍기위해 나름대로 많이 노력했다


보리타작 하는 옆에서 먼지를 쓰면서 20분 가까이 서성거렸고 멀리가라고 손짓해도 웃으면서 친해보자는 미소와 텔레파시를
 
계속 보냈다.

보리알맹이를 포대기에 다 담아넣고서야 잠시 나를 보며말을 건넸다.

그 첫마디가 "어디서 왔느냐?" "무엇하러 왔느냐?" 였다.

비록 나와 비슷하게 어슬픈 영어실력이었지만  대부분 라다키들이 고유언어를 사용하는데 아주머니는 영어교육을 받았는 것
 
같아 내심 반가웠다.


어슬픈 영어로 잠시대화를 나누면서 아주머니는 나의 클래식사진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엔 나는 "여행겸 사진을 찍어러 왔다"고 하며 한 컷 찍고 갈려고 했으나, 나에게 사진을 찍어서 내용물을 줄 수 있느냐는

말에 나는 좀 망설였다.


ROLLEIFLEX 필름카메라이므로 결과물을 볼수도 없고 인화물을 인화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에 그냥 사진만 찍고

내빼려 했으나,
많이 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YES, I PROMISE TO POST  A PHOTO"라고 말해 버렸다. 이제 바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아 마음이 흐뭇했다.


그러나 그녀의 딸 때문에 한참이 더 걸려야 했다. 한사코 사진기 앞에 얼굴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멀리 가버린다. 어머니가 쫒아가
 
다시 데려온다.


그때 나는 어슬픈 영어실력으로 이렇게 설득했다(꼬셨다말이 더 적절?)

"내가 찍는 이 사진은 100년 이상을 보존할 수 있다. 세월이 지나 어머니가 돌아가시더라도 너는 이사진에 담긴 너의 어머니를

영원히 볼 수 있다."


 (이 말을 영어로 만들어 말하고 상대방이 알아 듣는데 5분 정도 걸렸다...정말 영어 공부안해 놓은게 후회 막심......)

잠시뒤, 딸은 얼굴을 가린 수건을 풀었으며 나는 활짝 웃는 그녀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모녀가 많이 닮았다는 생각도.....

모녀는 가장 좋은 모습을 남겨두려는지 각자 편안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 순간 1/250 초의 속도로써 필름에 기록되었다.



내가 인도에서 돌아온 8월말 한국은 찜통더위로 난리였으나, 나는 오히려 춥다는 것을 느낄 지경이었다.

광견병 치료 백신을 구하고 치료하느라 일주일 정도 허비한 뒤 충무로 암실에서 콩죽같은 땀을 흘리며 현상/인화를 했다.

사진집을 만들기 위해 눈물겨운 작업을 해야만 했다.

ILFORD FB를 주로 사용해왓으나 이번에 체코에서 만든 FB인화지를 선택했다. 값이 좀 더 비싸지만  이번에 만들 사진책 

" 영혼이 숨쉬는 곳
LADAKH"
을 위해
좀 더 투자하기로 했다.

위 모녀의 사진을 인화할때 신경을 많이 썼다. 사진찍은 각도가 맞지 않아 얼굴부분이 검게 인화되는 바람에 인하지 3장 정도를
 
버리고서야 맘에
드는 인화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또한 100년 이상이 가도 변질되지 않도록 FIX와 수세에 신경을 좀 더 쓰고

다림질까지도 정성스럽게....


그해 9월말 동티벳 여행 출발일정이 확정되면서 즉시 광화문 우체국으로 달려가서 다른 사람들의 사진과 함께 모녀의 사진 2장

도 국제우편등기로
부쳤다.


워낙 오지라서 등기가 제대로 도착했는지가  미심쩍지만 그래도 잘 도착했으리라는 믿음을 가진다.

내가 들인 비용(인건비 제외)은 10,000원 정도 였지만 내가 느끼는 푸듯함은 무한할  뿐이다.

이 한장의 사진이 두 모녀의 정을 영원히 변치 않게  간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FROM "영혼이 숨쉬는 곳 LADAKH(Free-traveler 著) 22p -






   Leh-Ladakh, INDIA
   august,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