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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흔적/글쓰기

The Salley Gardens

첫사랑은 예민한 상처다.
그것은 마치 섬세한 아라베스크 무늬가 새겨진 도자기 같아서
조그만 부주의 에도 쉽게 상처입고 그렇게 한번 가버린 사랑은

이따금 스치는 바람에도 가슴시리게 아픈기억이 되어 돌아온다.
첫사랑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뿐더러 영원히 되찾을 수도 없다.
 
그 것은 나에게도 돌이킬 수 없은 "경험에 대한 노래"이자  고향에 대한 또 다른 그리움이다.
나는 눈을 감고 눈을 감고 저멀리 아일랜드의  버드나무 정원아래에서
사랑을 약속하는 젊은 두 남녀를 그려본다.

옛날 하고도 먼 옛날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아래로 짙은 녹음이 드리워진 버드나무 정원
시냇물을 따라 흐르는 부드러운 바람에도
그 버드나무는 귀를 기울이 듯 살랑거린다.

그 한가로운 여름 풍경 아래 아직 세상에 때묻지 않은 풋풋한 젊은 두남녀가 
서로를 마주보며 뜨거운 사랑을 속삭인다.
하지만, 철없는 사랑은 오래 갈 수 없는 법
두 사람의 짧은 만남과 이별을 뒤로한채 세월은 시냇물처름 유유히 흐르고
어느새 노인이 되어버린 그 소년은 지나간 사랑을 후회하며 노래를 부른다.

그 옛날 저 버드나무 정원에서 사랑을 속삭이던 첫사랑을 그리며.....

                                                                                                        - William Butler -




「The Salley Gardens」

Down by the salley gardens  / My love and I did meet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  내 사랑과 나는 만났었지요

She passed the salley gardens / With little snow-white feet.  그녀는 눈처럼 흰 귀여운 발로 버드나무 동산을 건넜지요

She bid me take love easy/ As the leaves grow on the tree   그녀는 내게 나무에서 나뭇잎이 자라듯 느긋하게 사랑하라 했지만

But I, being young and foolish / With her would not agree    그때 나는 젊고 어리석었던 까닭에  그 말을 곧이 듣지 않았습니다.



In a field by the river / My love and I did stand                        시냇가 어느 들녘에  내 사랑과 나는 서 있었어요

And on my leaning shoulder / She laid her snow-white hand   축 쳐진 내 어깨 위로 그녀는 눈처럼 흰 손을 얹어주었지요

She bid me take life easy / As the grass grows on the weirs  
그녀는 내게 언덕 위에 풀들이 자라듯 인생을 여유롭게 살라했지만

But I was young and foolish / And now am full of tears         그때 나는 젊고 어리석었던 탓에 지금 내눈엔 눈물이 가득고입니다.


* salley
: sallow라는 말의 변형으로 버드나무의 일종임



                                                                                                                                                                         - Written by  Yeats -




원래 제목은 "An Old Song Resung(다시 불러 본 옛 노래)"이었다. 예이츠는 이 시의 내력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석을 붙이고 있다. "이 노래는 슬라이고의

밸리소데어라는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어느 할머니가 가끔 혼자서 기억을 더듬어 불렀던 3행 짜리 불완전한 옛 노래를 다시 다듬어 완성시켜 본 것이다."




 


예이츠 (Yeats, William Butler) [1865.6.13~1939.1.28]  아일랜드 시인
 
1865년 아일랜드 더블린 샌디마운트에서  화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화가가 되려고 수업하였으나 전향하여 시작(詩作)에

전념하였다.

그는 민족주의자인 모드 곤에게 여러차레 청혼하여 거절당하며 모드 곤과의 사랑은 결실을 맺지 못하였지만 아일랜드 민족운동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 또한 그가 자란 슬라이고 지방에 남아 있던 아일랜드의 신화와 전설에 깊이 매료되기도 했다.

1891년 아일랜드 문예협회를 창립하고 그레고리 등과 협력하여1899년에   더블린에 아일랜드 국민극장(후의 애비극장)을 창립하였으며,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참가하여 아일랜드 자유국 성립 후에는 원로원 의원이 되었다(1922∼1928).

예이츠의 시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는 "시인은 현자처럼 생각하더라도 자기자신을 인반인처럼 표현해야 한다"는 아리토스텔레스의 말을 자주 사용했다

"삶과 죽음에 대해 차디찬 시선을 던져라, 말을 탄이여 지나쳐 가라"라는 묘비명을 남겼다고 한다.

1923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주요저서로는 《환상 A Vision,1925》이 있음.



                                                      < 예이츠의 숙명적인 사랑 모다곤
>

1889년 예이츠는 열정적이고 화려한 미모의 아일랜드 여인  maudgon을 만난다.

그는 그 순간부터 "내 인생의 고뇌는 시작되었다"라고 기술했다.

예이츠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으나 그 사랑은 희망이 없는 것이었다. maudgon은 그를 좋아하고 존경했으나

사랑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열정을 아일랜드에 아낌없이 바쳤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목소리와 몸으로 몸소 구사

하는 반항자이며 웅변가였다.
그녀를 통해 예이츠 역시 아일랜드 혁명에 관심을 가지고 부분적으로 혁명에 동참하게 된다.

1899년 예이츠는 maudgon에게 청혼했으나 거절당했다. 4년 후 그녀는 아일랜드의 애국 동지이며 영국의 압제를 함께 증오하던 아일랜드 군인
존 맥브라이드 소령과 결혼했다.

그녀는 아일랜드 정치범 석방운동을 벌였고 1916년 부활절 봉기에 가담했는데 이 사건으로 남편은 총살당하고 그녀는 수감되었다.

(아들 숀 맥브라이드는 뒤에 아일랜드 외무부장관이 되었고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maudgon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예이츠는 독신으로 지내다 1917년 예이츠는 maudgon의 딸 이졸트 곤에게 청혼했으나 거절당했다.
 
몇 주 뒤 조지 하이드 리스에게 청혼해 1917년 결혼했다. 1919년 딸 앤이 태어났고 1921년 아들 윌리엄이 태어났다. 1922년 아일랜드 자유국이 설립

되어 예이츠는 아일랜드 상원의 새 일원이 되어달라는 요청에 수락했고 6년간 봉사했다.